가을 이야기
이정록
사계절 중 유독 가을이 오면
혼자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습니다
왜일까요?
가슴 속 풍요로 출렁이니
설래이고 행복해 지다가도
스치는 서늘한 바람에 갑자기 우울해지고
잎새가 서걱거리기만 해도 눈물이 나기도 합니다
어느날은
누군가가 그리워지고
사랑하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죽을만큼 좋아하는 사람이 옆에 있어도
배고파 우는 아이처럼
사랑을 달라 조르기도 하였지요
또 어느날은
어느 여름날 아득히 멀어져간 인어를 추억하며
목이 긴 고래처럼 쭈욱빼고
수평선너머 고슴도치 섬 바라보다
낮 꿈을 꾸기도 합니다
그러던 또 어느날은
이별이 도려낸 가을자락
스스락거리는 갈대 소리와 풀벌래 소리 들으며
달빛 들인 대청마루에 누워
죽베개 눈물 젹시다
꺼억꺽 목울대 훌터내기도 하고
초록(草綠)을 추억하고 조락(凋落)을 아파하며
퍼르퍼르 찾아 올 눈꽃을
그리워하기도 합니다
농부들이 낟알을 거둬들이는 들녘을 거닐다 보면 풍년가 가락에 마음이 흐뭇해지고
어린시절을 추억하며
아버지 어머니 생각을 합니다
지금은 어느 별에 계시는지, 가슴이 아리고
그러다 그 시절 개구쟁이 동생들 생각이나고
특히나 두. 살 터울 동생, 깐돌이 생각에
파안대소하기도 하지요
여행을 계속 하다보면
아직은 서툴지만 풋풋한 신혼부부
고운 한복 예쁘게 차려입고 두 손 꼬옥 잡고
거니는 모습이
왜 그리도 아름다운지요
바다와 단풍이 공존하는 어촌마을을 찾았지요
해변도로 옆 야산에 군락을 이룬 활엽수들이
하루가 멀다하게 울긋불긋한 옷을
갈아입는 것을 보노라면
가슴이 군불 지피는 것처럼 뜨거워지고
그 밑 철썩이는 파도가 갯바위 쓸어 안고
경배하는 애정행각에
실소를 던저 보기도 하지요
일출이 항구에 출근하면
어부들 고깃배 들어오고 경매가 시작되지요
예리한 눈치 작전, 여리한 손 놀림,
알송달송한 암호,
보고만 있어도 정겨운 삶의 현장이지요
어부 아내의 예리한 칼질에 썰린 생선회 들고 등대밑에서 떠오르는 태양 안으며
소주 한 잔 드리키고 회 한 점 입에 넣고 씹으니
품 속 태양이 따뜻해지고
벌나비가 입 속에서 꿀을 칩니다
어느새 바싹말랐던 시샘(詩泉)이 차오르니
지나온 여행길 추억하며 마음에 담는 시를 쳐 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띄울 절절한 시도 쳐서
갈바람 다리에 묶어 날려보냅니다
가을은 이처럼 희노애락(喜怒愛樂)이
공존하는 계절이고 가슴 시린 사랑과 추억을
안겨주는 계절입니다
올 가을에는
이슬 속에 우주를 모시는 이야기를
노을이 잉태하고 별들이 산란하여 달빛이 키워가는 별꽃 이야기를
봄이 잉태하고 여름이 키워가고 가을이 해산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아름슬픈* 가을 이야기를
※아름슬픈: 아름답고 슬픈(시인의 신조어)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가위만 같아라 (0) | 2018.09.25 |
---|---|
샘문학 오프라인 특강 및 시낭송 콘서트 (0) | 2018.09.25 |
반딧불이 전사 (0) | 2018.08.21 |
축사, 겨레시단하늘 애국시 낭송회. 부처 (0) | 2018.08.20 |
바닷가, 그 사랑으로 (0) | 2018.08.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