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붉은 심장으로 쓴 가을의 전설 --
승목 이정록
청량산 가는 길이 후끈거리고
아장아장 갈빛의 눈 속으로 걸어 들어오는
애기단풍이 뜨겁습니다
하늘다리 향해 오르는 늘솔길 중턱 쯤 오르자 청량사가 또아리 틀고 앉아 목탁을 두드리니
천 오 백 년 간 단잠 주무시던
원효대사가 벌떡 일어나시더니 마중나오시어
합장 하시며 반갑게 맞으십니다
청량사 오층석탑 아래서는
서러운 눈물 흘리며 삼 천 배 올리는
여인의 가슴의 범종이 무너지자 쇠북이 울고
목어가 뛰쳐나와 천지간 팔딱거리자
원효대사 헛헛한 웃음 웃으시더니
말씀하십니다
자신도 사랑 때문에 억 만 배를 올리고
저 소나무가 아가 때부터 어엿한 천년송이
될 때까지 탑돌이를 하셨고
그 어느날
애기단풍이 초경하던 가슴 뜨거웠던 어느날
암자가 와르르르 무너지고
범종이 와장장 깨어지자
머물던 바람 가슴을 찔리어 천지를 물들이니
사랑도 떠나고 나라도 떠나고
쇠북이 천 년을 울었다고 하십니다
그래 또, 천 년 간 단잠 주무신다 하시며
천 년 후에 깨우라 돌아 누우십니다
하여 뒷꼭지에 절을 하고
국운과 민초들의 평안을 빌며 길을 나서자
햇살 채질(債迭)하던 천년송(千年松)
솔솔솔 마중나와 늘솔길 열어 재끼니
백학이 춤을 추는 사랑놀음 밑으로
바람 난 바람의 품에 꼭 안겨 요요(姚搖)거리는
하늘다리 눈썹에 걸립니다
찰나의 격정 불꽃으로 타 올라
황홀한 풍경 병풍 촤르르 두르자
가을의 연민이 천 년 간 타 오를 사랑에
뜨거운 가슴을 후립니다
2017.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