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원고를 불태우고 -
시/이규보
소년 시절 노래하고
끄적거리느라 붓만 잡으면
원체 거침없었네
스스로 아름다운
구슬처럼 여겨 누가
감히 흠을 잡을까 했네
나중에
찬찬히 다시 보니까
한 편 한 편..
좋은 구절 하나 없구나!
차마 글 상자를
더럽힐 수 없어
아침 짓는..
아궁이에 넣어 태웠네!
올해 쓴 시
내년에 보면
똑같이 지금처럼
던져 버리고 싶겠지!?
당나라 시인
고적(高適)은 이런 까닭에
오십이 되어서야 시를 썼다지!
♤~ 이규보(1168~1241)의..
"시 원고를 불태우고"
(‘焚藁;焚三百餘首) ~♤
백운거사 이규보의
또다른 호는 ‘삼혹호선생’
(三酷好先生)이다.
거문고와 술,
그리고 시를 몹시도 좋아했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그는 특히 하루도 시를
쓰지 않고는 배겨내지 못했다.
시마(詩魔):
(시의 대한 예술적 열정)
때문이었다.
그 시마로 인해 이규보의
문집 "동국이상국집"에는
2,000편이 넘는 시가 실려 있다.
그러나 이규보가 생전에
썼던 시는 이보다 훨씬 많았을
게 분명하다.
원고가
마음에 차지 않을 때마다
아궁이에 넣어 태웠기 때문이다.
이 시를 쓰면서도 그는 자작시
300여수는 불살랐다.
"분삼백여수" 라는 부제가
그것을 말해준다.
시마에 걸린
대문호에게조차 시 쓰기는
어려운 일이었던가 보다.
바야흐로 신춘문예의 계절이다.
일간지 문화부에는 마감을
앞두고 문청(文靑)들의
원고가 수북이 쌓이고 있다.
하나 하나가 고통과 신열의
산물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설사 당장 등단하지
못하면 어떠랴 50에 시에
입문한 고적도 있다는데...!!
글.편집/승목 이정록
2015.12.16
Photo by Artem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