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편한 진실 -
승목 이 정록
모든 인간에게는
항상 결핍이라는 빈자리가 있어
그 어떠한 것으로도
채울수가 없다
.
그건 인간의 근본적인
태생적 속성이 물질이 아닌
비물질이기에 그렇다
.
형이상학인 본질에 대한
회귀성이 작동하기에 제 아무리
물질로 채워도 현상계에서는
만족할 수가 없다
.
그래서 모든 인간은
자기 안의 그리움을 안고 살지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끝없는 정신적 방황을 하며 산다
.
원시 시대부터 현대 문명에
이르기까지 인간들은 그 결핍에서
오는 갈망을 채우기 위해
다양한 가짜 신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실존적 철학을
전파하는 득도의 경지의 닥아선
종교 지도자를 경배 하기도 하며
만나면 무릎을 꿇기도 한다
.
그러나 인문적 사유와 같은
기본적인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 없이 이기주의적인
기복 신을 자기 안으로 끌어
들이면서 물질계,
즉 현상계를 절대계로 연결해주는
시도를 한다
.
그러다보니 종교에도
물질이 개입되어 채울 수 없는
결핍 앞에 다시 서게 된 것이다
.
인문적 사유를 하다보면
존재론적으로 인간이 가야하는
길이 보인다
.
가장 기본적인 것들이
투명하게 깨달아지고 알아져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발견하게 된다
.
바로 그 시점이 되었을 때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진짜 비물질계
즉 본질이나 본성 본향을 볼 수 있는 인식의 문을 열게 되는 것이다
.
물론 인식의 문을 지나기 전에는
여전히 현상계에 살고 있기에
갈등이 시작된다
.
쉽게 설명하면 먹고사는
문제와 같은 물질적 속성이나
도덕과 윤리 앞에 불편한
진실들을 만나게 된다
.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식의 문을 열지 못하고 다시
현상계로 돌아선다
.
그리고 여전히 채울수 없는
공허한 그리움을 안고 살다가
죽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
인문적 사유와 신앙은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연속성이다
.
사유없이 가진 신앙은
자칫 이기적 자아를 더 견고하게
할 수 있는 독선과 아집으로
합리화 될 수 있다
.
눈에 보이는 현상계와
보이지 않는 절대계 사이에는
연결통로가 있다
.
다시말하면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문을
열어야 한다
.
그 문이 바로 인식의 문이고
그 문 앞에는 사랑이라는 키,
그것도 자동인식으로 사랑을
가슴에 소유한 자들만이
통과할 수 있다
.
만일 그대들중의 누군가가
불편한 진실앞에 서 있다면
결코 포기해서는 안된다
.
여기서 다시 욕심과 욕망으로
돌아가면 다시 인식의 문 앞으로
되돌아 올 때 더 많은 것들을
잃거나 포기해야 한다
.
그만큼 아픔을 더 겪게 되는
고통이 따른다
.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불편한 진실로 느껴진다면
그 불편한 것들이 나를 사랑의
세계로 들어서지 못하게 하는
현상적인 것들이다
.
그걸 과감히 버리거나
무시하고 오직 사랑만을 몰입하고 인식하게 되면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절대계 안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
비로소 인식의 문을 지난 것이고
그런 사람들에게는 죽음 이후의
삶이 보이고 깨달아진다
15.04.02
Photo by Arte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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