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교 --
승목 이정록
꽉 찬 선홍빛이
서슬 퍼런 찬바람에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접습니다
아직은 연민이 있어
마지막 휘날래를 앞둔 수피아
만류하려 숲을 찾았습니다
붉은 깃발 나부끼며 청춘을 불사르던
수피아 눈빛을 떨구고 처절한 넋을
별들의 무덤에 얹습니다
교조적 순환의 이치에 순응하는
나래짓이 애처롭고
임을 보내 드리는 사유가
잔불 사르는 숲 숨을 죽이고
고요가 엄습을 합니다
보내드립니다
먼 길 떠나는 님 마음 아파
웃비가 지짐거리지만
내일은 하늘이 하얗게 내려 앉아
임의 발자국 덮어줄 것이고
나목의 가지가지 마다
수피아 선홍빛 사랑이 하얀 설화로
서리서리 열릴 것입니다
갈무리하는 숲이 서늘하지만
또 다른 미묘가 신묘히 스며 들고
임을 보낸 산보길,
정념의 불꽃이 사위니
붉은 달덩이 하얗게 야위어
날개가 퍼르합니다
올 겨울에는
숲의 정령 혼백 속에서
하얀 맘모스 털옷을 꺼내 걸쳐 입고
별 무덤에 모종한 임의 환생 기다리며
삭풍한설 견뎌 낼
긴 겨울잠을 자야겠습니다
2017.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