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이정록 교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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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동골 부자의 꿈

시인 이정록 교수 2017. 4. 21. 03:06

 

 

 

 

 

- 완동골 부자의 꿈 -

 

 

승목 이정록

 

 

 

소년과 아버진

다랭이논 둔치에 다발로 쪼로록 세워둔

저룹대에 기대 앉아 도란거린다

웃비가 지짐거리자

밀짚 도롱이를 걸치고

저룹대 비늘 속으로 들어가 몸을 숨긴다

그래도 비가 드리치자

팽나무 밑둥가리 오목히 패인

틈으로 몸을 의지하고 다랭이 논을 주시한다

나락 다발 말려서

열 다발식 쌓아 놓은 짚 비늘채

지난해 새벽녘의 도둑 맞았던 터라

기억이란 놈 벼랑끝에 배고품이 처절히 메달려

목숨줄 쥐고 있기에

날밤 눈썹에 당기어 걸고 지키려 함이다

 

는개비가 내린다

스산한 바람 쓱싹거리자 날선 정신 번득일 쯤

갑자기 소년이 겁나게 소리 친다

"아부지 저기 앞 산 공동메똥의 시퍼런 불들이

휘리익 피리릭 거리고 난리 났어라우"

그러자 아버지가 말한다

"아야,조용히 혀라 저건 도께비 불이란다

도께비 한테 들킹께 조용히 혀라"

소년은 불현듯 무서워진다

동맥줄기 번개를 치고 살결의 천둥이 울리자

두려움 허공에 메달려

심통을 두둘겨 댄다

 

신묘한 파란불이 사방간데서

휘리릭 휘리릭

솟았다 없어졌다 나타났다

난장법석이다

아버지가 또 말한다

"저건 도께비 불인디 망자가 한이 많아

혼이 저승 길 못가고 이승을 떠 도는 것이여

근게 들키면 귀신 한테 홀려서

미쳤다가 나중엔 북망산 가는기여

그런게 조용히 혀고 숨도 참아야 혀

알았지야"

그렇게 고요가 흐르고

비거스렁이 펼처진 두르마리구름 돌돌 말아

구름다리를 넘어가고

소년과 아버진 그렇듯 바라던 새벽녘

치열한 삶을 안내 할 여명을

새벽 밥상으로 펴고

선한 눈망울 껌뻑거리는

비이슬을 반찬으로 차릴 요량이다

 

어둠의 정령도

소년과 아버지에 도란거리는 소리

밤샘 엿 듣다 도께비 다독여

밥상을 뒤로하고

혼불과 물안개 몰아몰아

깊은 숲 속 어둠의 잠행을 떠난다

소년은 팽나무 밑둥가리 기댄채

곤이 잠이 들었고

아버진 밀짚 도롱이를 벗어

씻나락 까먹는 소리 잠꼬대 소리

소년을 덮어 주고...

 

난반사 되는 소명의 햇살 속에서

농자의 풍성한 결실과

미래의 펼쳐질 소년의 시중선의 경지가

태산 자락에 펄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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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룹대 : 삼 대마 말린 대

 

* 짚비늘 : 나락(벼)을 대량으로 쌓아 놓은 짚단

 

* 밀짚 도롱이 : 밀짚으로 만든 우비

 

* 공동메똥 : 공동묘지

 

* 웃비 : 비가 쫙쫙 내리다가 잠시 멈추었을 때,

비의 기운이 느껴질 때

 

* 지짐거리다 : 조금씩 내리는 비가 자꾸 오다

말다 하며 자주 내린다

 

* 비거스렁이 : 비가 갠 뒤의 날씨가 그 이전의

날씨에 '거스르게'시원하게 느껴진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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